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노턴 1세 (문단 편집) == '황제' 즉위 == 1859년 9월 17일 노턴은 어느 [[군인]]에게서 받은 허름한 [[군복/미군|미합중국 육군 군복]]의 차림을 하고 정신이 약간 불안정한 상태로 다시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왔다. 노턴은 샌프란시스코 지역 [[신문]]인 샌프란시스코 데일리 이브닝 불레틴에 찾아가 편집장에게 자신을 미국의 [[황제]] 노턴 1세라고 선언했다. 편집장은 속으로는 기가 찼지만 그에게 흥미를 느끼고 신문 판매 부수를 늘리려는 목적으로 그의 즉위 선언문을 신문 1면에 실어주게 된다.[[https://librewiki.net/wiki/%EB%85%B8%ED%84%B4_1%EC%84%B8/%EC%96%B4%EB%A1%9D| ]] 그리고 즉위 선언에 뒤이어 1주일 뒤 2차 선언에서, 노턴은 버지니아 주지사 등 고위 관리들의 부패를 이유로 미국 정부의 해산을 명령하고 [[제임스 뷰캐넌]] [[미합중국 대통령]]의 파면과 더불어 의회를 해산한 뒤, 황제인 본인이 [[친정#親政|친히 정사를 돌본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그리고 당시 부통령이던 켄터키의 [[존 C. 브레킨리지]]를 신임 버지니아 주지사로 임명한다고 했다. 그러나 당연히 [[워싱턴 D.C.]]의 행정부는 이에 대해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고, 노턴은 '[[육군참모총장]]'에게 "필요한 병력으로 의사당에 진격하여 국회를 해산시키라"고 명령했다. 물론 노턴이 진격 명령을 내린 사람은 실제 참모총장이 아니라 약 15년 전 육군 최고 사령관이던 윈필드 스콧 장군이었는데, 이 시기에 그는 이미 74살의 노인으로 당시 미래에 [[워싱턴 주]]가 되는 워싱턴 준주에 머물고 있었다. 또한, 연방 각 주에 샌프란시스코의 음악홀에 대표단을 파견하여 "황제에게 경의를 표하고 법적으로 필요한 수정조치를 취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뒤이어 노턴은 [[프랑스]]가 [[멕시코]]를 침략했을 때 자신이 멕시코의 보호자가 되겠다고 선포했으나, 후일 멕시코의 보호자 자리를 포기했다고 한다. 그는 자기가 가진 낡은 육군 [[대령]] [[군복]] 한 벌만을 입었고, 특별한 직업은 없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와 [[빅토리아 여왕]]의 초상화가 걸린 낡은 하숙집에서 살았다. 그는 매일 시민들을 만나거나, [[하수구]]와 [[버스]]의 시간표를 점검하고 매주 종교적 화합을 위해 각 [[교단]]의 종파를 바꿔가며 [[예배]]하는 활동을 했다. 샌프란시스코의 유명한 개들이었던 '[[버머와 래저러스]]'의 주인이라는 소문이 있었지만 실제로는 아닌 듯 하다. 아마도 한 때 잡종개를 길렀던 부분이 와전된 것으로 보인다. 동시기에 존재했지만, 정작 본인은 왜 자신과 개들을 한 그림에 그려넣냐고 역정을 낸 적도 있다. 그 외에도 생전 이런저런 소문이 나돌았는데 [[나폴레옹 3세]]의 아들이라는 소문도 있었고, 사실은 부자라는 소문도 있었다고 한다. 실상은 그저 망상장애 환자일 뿐이나, 이 자칭 "황제"는 [[샌프란시스코]] 시민들에게서 대단한 인기를 누리는 유명인사였다. 여기에는 비록 정신질환을 앓고 있지만 인품 자체는 아주 훌륭한 사람인데다가, 이전부터 그를 알고 있던 이웃이나 동업자들이 "원래는 멀쩡했던 사람인데 사업 실패로 인해 미쳐버렸다."라고 사정을 알려주어 많은 사람들에게 동정을 산 점도 한 몫 했다.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2006년 3월 5일과 [[2013년]] [[10월 6일]]에 노턴의 일생을 다룬 프로그램을 방영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